
14일 개봉한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라는 영화에 대한 평을 쓴 기사가 2개 있습니다.
물론 개봉하기 전에 쓴 것들이지요.
지금부터 2개의 기사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본문 내용 전체만 그대로 싣겠습니다.
출처를 밝혔을 경우 선입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냉철한 판단을 듣는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읽으시고 어디 기사인지 찾지 말아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제가 쓴 기사는 아닙니다. 똑같은 한 영화를 둔 두 언론사의 기사인데요.
후속 포스팅은 여러분들의 참여후에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저 2개의 기사를 연속으로 읽고 나서 각각 기사에 대한 평을 해주셔도 좋고, 두 개 기사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를 해주셔도 좋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차후에 하루나 이틀 뒤에 바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기사 나갑니다요! 꼭 좀 읽으시거든 한 줄 평가도 소중하게 보관하겠습니다.
추가: 막연하게 평가를 하는 것이 어려우실까봐 손쉬운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함께 드리겠습니다.
2개의 언론사 밖에 없다는 가정하에 기사를 읽고 어느 기사의 신문을 구독하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과 함께 평가 해주시면 더욱 좋을 듯 싶습니다.
# 기사1
“평범한 삶…. 여기서는 그게 전부잖아.”
영화의 첫 장면. 익숙한 섹스를 사무 보듯 마치고 나서 아내가 남편에게 서글픈 얼굴로 말한다. 그들은 몰랐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30분 뒤에 그 푸석한 섹스의 온기를 깨닫게 되리라는 것을.
14일 개봉한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꼼꼼한 장기 리허설로 유명한 시드니 루멧 감독다운 연출. 이 85세 노익장은 ‘에쿠우스’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형사 서피코’ ‘허공에의 질주’ 등에서 늘 시계톱니처럼 매끈하게 착착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를 선보여 왔다.
부동산 회계사인 형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와 배관공인 동생 행크(에단 호크)는 모두 돈에 쪼들린 신세다. 궁리 끝에 부모의 보석상을 털기로 한 막돼먹은 이 형제. “보험 보상이 충분할 테니 부모에게 별 피해가 없을 것”이라 변명하며 강도짓을 저지른다. 하지만 간단할 듯했던 범행은 뜻밖의 사고를 부르고, 가족 모두가 쓰라린 파멸로 치닫는다.
앤디에게는 흉금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다. 아내는 주말의 섹스파트너. 울화가 터질 때 위안을 주는 것은 사무실 캐비닛 안의 코카인 봉지뿐이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고급 마약카페 게이 마담이 유일한 말벗이다.
“부동산 회계란 게… 어떻게 셈을 해도 정확한 답이 나오는 일이야. 조각을 이어 붙이면 하나의 덩어리가 나오듯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져. 그런데 내 인생은 그렇지가 않아. 아무리 더해 붙이려 해도 연결이 안 돼. 제대로 되는 게 없어.”
마약상은 들은 척 만 척이다. “결혼을 하거나 정신병원 상담을 받아 봐요.” 계산 끝낸 손님의 다음 방문을 생각해 억지로 내놓는 심드렁한 립 서비스. ‘너절한 신세타령 들어줄 서비스는 요금에 포함하지 않았으니 닥치고 썩 꺼지라’는 재촉 인사다.
이야기는 조각퍼즐 맞추듯 여러 시점을 오가며 채워진다. 영화 초반의 강도 사건을 중심으로 ‘범행 하루 전 앤디’ ‘범행 30분 뒤 행크’ 등 소제목을 붙여가며 한 장(章)씩 살을 붙여나간다. 그 합(合)은 망가지고 곪아터진 한 가족의 흉측한 속사정이다.
행크는 매주 목요일 형의 침대 위에서 형수와 섹스를 즐긴다. 초등학생 딸로부터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딸 망신이나 준다”는 소릴 듣고도 대꾸 한마디 못한다. 이혼한 아내는 뒤에서 차갑게 웃음 짓는다. 앤디가 자식의 유치원 공연에서 치는 박수는 ‘나는 멀쩡한 사람’이라고 떠벌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영화 후반. 형제의 아버지는 아내가 죽고 나서야 무심했던 아들 앤디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말을 한마디 건넨다. 그에 대한 아들의 반응은 감동이 아닌 분노다. 가족에게 건네는 사과의 무게는 시간이 갈수록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루멧 감독은 오프닝 크레디트 제목 앞에 ‘30분 전의 천국’이라는 어구를 물렸다. 일상의 천국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것을 잃고 난 다음이다. 퍽퍽한 섹스는 앤디가 가졌던 유일한 인간적 관계였다. 형제는 각자 “탈출과 새 출발”을 꿈꿨지만, 그들은 30분 전에 이미 과분한 천국에 있었다. 18세 이상 관람가.
# 기사2
14일 개봉하는 미국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적어도 세 번 놀라운 작품이다. 우선 모든 배우의 연기가 오싹하리만큼 뛰어나다는 면에서 놀랍고, 연출자가 올해 85세인 시드니 루멧(연출 당시엔 83세) 감독이란 점이 놀랍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걸출한 영화를 씨네큐브 광화문 한 곳에서만 개봉한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의아하다.
뉴욕의 회계법인 중역인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횡령한 회사자금을 채워 넣어야 하는 상황이고 동생 행크(에단 호크)는 이혼 후 딸 양육비도 대기 어려울 만큼 빈털터리다. 형은 어느 날 동생에게 "아무도 다치거나 손해 보지 않는 일"이라며 노부모가 경영하는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위협만 할 테니 아무도 안 다칠 거고 모두 보험처리 되므로 손해도 없다는 것이다. 이 위험한 불장난에 낀 행크 친구 바비가 범행 도중 우발적으로 어머니를 살해한다. 형제는 패닉에 빠지고 아버지는 나머지 범인을 잡겠다고 손수 나선다.
이 영화는 인간이 어떻게 산 채로 지옥을 향해 전력 질주할 수 있는지 섬뜩하게 묘사한다. 영화 제목은 아일랜드의 건배사 "악마가 당신의 죽음을 알기 30분 전, 이미 천국에 가 있기를(May you be in heaven half an hour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에서 따 왔다. 위트 있는 축사이지만 영화에서는 다른 의미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단 30분. 삶이 지옥으로 바뀐 시간이다. 그 지옥에 비하면 30분 전의 어떤 상황도 천국일 것이다.
전처와 딸에게서 '무능력자(loser)'란 모욕을 당하는 행크는 형수와 불륜관계이면서 죄의식도 없다. 회사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앤디는 마약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는 부모 재산을 노략질하는 것을 삶의 터닝포인트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이들의 벼락 맞을 악행은 천벌을 받는다. 자식이 어머니를 죽이자, 아버지는 자식(범인)들을 추적한다. 관객은 죄 구덩이에 빠진 인간이 구덩이를 벗어난답시고 더욱더 파고드는 모습을 괴롭고 불편하게 목도한다.
자식들이 어머니를 죽인 뒤, 몹쓸 형제가 그간 틀어막고 있었던 추악한 잘못들이 앞다투어 쏟아진다. 돈이 다급한 형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된 김에 보석상을 빨리 처분하자"고 재촉한다. 그의 아내는 시동생과의 불륜을 남편에게 위악적으로 고백한다. 형제의 악행은 거칠고 빠르게 커져가고, 아버지는 넋이 나간 채 아들들을 따라다닌다. 아버지는 그제야 지옥이 30분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뜨거운 오후(1975)'와 '네트워크(1976)'로 70년대에 이미 거장 칭송을 받은 루멧 감독은 나이가 무색하게 탄탄하고 밀도 높은 연출을 보여준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에단 호크, 아버지 역할 앨버트 피니의 호연은 너무 완벽해 소름 끼칠 지경이다.
(A는 기사1, B는 기사2구요)